조카가 세 살쯤 되었을 때였다.
가벼운 봄날, 조카는 나보다 몇 걸음 앞서 걷고 있었다.
양팔을 휘젓고 신이 나서 걷던 녀석이 갑자기 꽈당, 고꾸라졌다.
순간적으로 달려가야 하나 싶었지만, 그땐 왠지 그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보고 싶어졌다.
그래서 일부러 못 본 척하고 잠시 멈춰 섰다.
조카는 쓰러진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.
그리고 무릎을 툭툭 털었다. 혼자서도 거뜬히 일어났다.
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다가, 그제야 나와 눈이 마주쳤다.
그 순간이었다. 우르르 쏟아지는 감정처럼, 갑자기 “우왕~~~!!!”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.
좀 웃겼다. 눈물도 없던 얼굴에, 날 본 뒤에야 서럽게 울기 시작한 모습이.
그 순간 확신했다.
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, 조카는 울지 않았을 거란 걸.
그 애는 아마도 진짜로 아파서 운 게 아니었다.
‘괜찮은 척을 멈출 수 있어서’ 운 거였다.
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안도감, 그 앞에서는 약해져도 괜찮다는 느낌.
그게 그 애를 울게 만든 거였다. 어쩌면 나도 그렇다.
늘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간다. 남 앞에서는 덜 아픈 척,
더 괜찮은 사람인 척.
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.
괜찮은 척을 멈춰도 되는 단 하나의 순간을 위해.